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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익 중부동물병원장 “사랑스런 동물들… 내 인생의 동반자”

2008.01.10 04:30 | Posted by 오마이도그 오마이도그

내 인생에 정년은 없다 / 조휴익 중부동물병원 
“사랑스런 동물들… 내 인생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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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일보

장애완동물 백화점, 애완동물 전용 병원, 애완동물 전용 목욕탕, 애완동물 전용 호텔에 애완동물 전용 커피숍까지 생겨난 요즘에 비해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애완동물들은 그저 개나 고양이 등에 지나지 않았다.


애완동물 문화가 생겨난 초기부터 지금까지 애완동물을 위해 애써온 동물들의 친구 조휴익 중부동물병원장(67).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동물병원은 물론 책 집필 등 아직도 애완동물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애완동물계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 애완동물 역사를 조리있는 말 솜씨로 풀어 놓았다.


◇신문·잡지에 쓴 글만 100여편


1970년대 애견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나 ‘애견백과’란 책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에는 애견이나 애완동물 관련 서적들이 많았지만 한국어로 쓰여진 책은 전무했던 시절이다. 애견에 대한 체계를 기초부터 잡는다는 마음으로 쓰여진 이 책 덕분에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방송가에 초대받기 시작했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애견문화가 시작되면서 점차 그를 필요로 하는 곳들도 많아졌다. 라디오는 물론 애견 관련 상담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방송사에 초청받았다.


첫 책의 성공에 이어 ‘애견신백과’ 등을 펴냈다. 사냥 문화가 상류층을 중심으로 퍼지자 투견 관련 책 ‘도사견’을 출간한데 이어 지난 1997년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화로 보는 애견 기르기 백과 ‘내사랑 똘네’도 펴냈다. 방송가에서 그를 찾고 책도 쓰니 각종 신문·잡지에서 요청해 올린 글만 100여편에 이른다.


대한수의사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작은 단체였던 수의사회를 키우기 위해 수의사의 날도 제정하고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했다. 덕분에 겨우 4천만원 상당이었던 예산을 2억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난 2000년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경기도에 내려와 중부동물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인만큼 힘이 닿을 때까지 반려동물인 애완동물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도 꾸준히 펼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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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일보

◇국내 최초 애완동물 판매소 애조원


그는 국내 최초로 설립했던 애완동물 판매소인 애조원을 기억해냈다.


애조원은 친구가 운영하던 곳으로 후에 친구가 퇴계로에 애조원과 같은 동물병원을 개원하면서 조 원장을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웃했다. 당시로서는 제물포고와 서울대 수의대 졸업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학력이었다.


개는 그저 개일뿐이라는 개념이 팽배했던 당시 서울에 동물병원이 60여곳 있었지만, 대부분 인근 가구에서 기르던 돼지나 소 등 가축들을 돌봐주는 곳으로 그가 처음 일하던 병원처럼 애완동물들을 관리하던 병원은 다 찾아봐야 3~4곳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서울대 수의대 교수들도 수업을 마치면 딱히 할 일이 없어 조 원장의 소개로 같은 병원에서 함께 일을 봐주게 됐다.


서울대 교수들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아침부터 손님들이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고는 하지만 한남동처럼 부유촌 집에 가면 고급 애완견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초기 고객들이었고, 당시 웬만한 재벌가 집을 강아지를 돌본다는 이유로 수시로 드나들 수 있었다.


1968년 부유층 애완동물에 이어 사냥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사냥개도 함께 인기를 끌었다. 수입하지 않으니 사냥개라고 해도 순종이 별로 없던 시절, 미군이 군용으로 들여온 세퍼트나 도베르만과 교배해 낳은 잡종견 정도가 분양될 정도였다.


1970년 애조원에서 순종 사냥개를 수입해 팔기 시작, 개 경주대외나 투견대회까지 생겨났다. 개 관련 산업들이 점차 커지면서 축견협, 경비견협, 군용견협 등도 생겼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애완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급증, 도시를 중심으로 애견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각종 애완동물 관련 시설들이 늘어나 동네들마다 동물병원을 볼 수 있는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처음 애조원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고 지금까지도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그는 애완동물계 산 역사였다. 긴 시간만큼 애완동물에 관해서도 해박한 그는 지금까지 쓴 수많은 글들을 모아 정리하는 의미에서 자서전을 다시 집필할 계획이다.


조 원장은 “서울을 떠나 경기도에 내려와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힘이 닿을 때까지 반려동물인 애완동물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도 꾸준히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경험과 지식 등을 갖춘 그는 아직도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등이 많아 보였다. @ 경기일보 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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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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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송하경 사장

2008.01.10 00:28 | Posted by 오마이도그 오마이도그


윤은기의 CEO & Friend


모나미 송하경 사장 TV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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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앤TV


윤은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윤은기입니다. 국내 유수기업을 이끌어가는 리딩 CEO와 특별한 대담을 나눠보는 윤은기의 CEO&Friend. 오늘은 모나미 송하경 사장을 모셨습니다. 송 사장님 안녕하세요.


송하경: 네, 안녕하세요. 총장님.


윤은기: 모나미하면 온 국민이 153볼펜을 생각하는데 최근에 볼펜회사가 아닌 새로운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습니다. 모나미가 추구하는 변화는 무엇입니까?


송하경: 모나미하면 볼펜회사로 각인이 찍혀있는데, 사실 1994년도부터 볼펜 생산이외에 HP와 잉크카트리지를 한국에 총판하고 있습니다. 유통업종으로 변신을 한 지는 꽤 오래됐지만 소비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고, 이에 작년에 CI를 바꾸고 본격적으로 사무용품유통서비스 기업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알리게 되었습니다.


윤은기: 변신하게 된 계기는 어떤 건가요?


송하경: 필기구 시장은 어느 정도 성숙되어있고, 한국 인구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정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계속 성장을 해야 되기 때문에 새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다 열악한 유통 환경에 착안해 변신을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와 같이 문구 사업에 종사한 재래시장 상인들과 함께 외국 기업들이 들어오지 못 할 정도로 탄탄한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윤은기: 모나미 스테이션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송하경: 문구 사무를 구입하는 데는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온라인상에서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하는 경우이고, 하나는 기존 문구점에서 구입하는 경우입니다. 두 가지 다 기본적인 물건만을 공급하는 건데, 모나미스테이션은 3가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과 똑같이 문구 사무를 공급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문서를 편집하고 제단해서 교재를 만들어주는 출력센터 운영이며, 세 번째는 모바일 오피스 즉, 밖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처럼 일 할 수 있는 도킹 장소가 되겠습니다. 바깥에서 인터넷을 사용해 회사랑 연결하거나 출장의 경우, 회사에서 파일을 인쇄하고 필요한 볼펜을 회의장에 놓는데, 모나미스테이션을 이용하면 모나미스테이션에서 파일을 편집하고 서류들을 원하는 장소에 갖다 놓고, 또 거기에 필요한 볼펜이나 메모지를 다 갖다놓기 때문에 출장자는 단순하게 가방 하나 들고 가서 손님들을 접대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외부에 있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지원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은기: 모나미스테이션의 준비과정과 반응은 어떻습니까?


송하경: 작년에 CI를 바꾸고 여의도에 프래그샵을 열었습니다. 1년 동안 영업활동과 여러 가지 구상들을 테스트를 했는데 아주 성공적입니다. 이를 계기로 올해부터 모나미스테이션 파트너쉽을 시작했습니다. 성과 중 하나는 저희뿐 아니라 지금까지 저희와 거래하던 도,소매상들이 파트너쉽을 맺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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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앤TV

윤은기: 모나미 볼펜이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송하경: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모나미 이미지에 대해서 시장조사를 했는데 모나미의 이미지 자체는 신뢰할 수 있다가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사실 저희 제품이 오랫동안 국민들한테 사랑을 받은 것도 어떤 품질이나 국민들이 요구하는 신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볼펜이나 여러 가지 저희 제품들은 한 시간, 두 시간 아니면 매일 쓰는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품 중에 한 가지라도 잘못되면 그것은 굉장히 큰 브랜드에 대한 실망감인데, 아직까지 모나미가 많은 신뢰를 보여준 것이 지금까지 사랑을 받게 된 원인인 것 같습니다.


윤은기: 모나미 볼펜에 얽힌 과거 추억은 있나요?


송하경: 저는 볼펜을 잘 안 갖고 다닙니다. 볼펜을 갖고 다니면 항상 다 뺏겨서 예전에는 많이 갖고 다녔는데, 요즘에는 거꾸로 옆 사람한테 볼펜을 빌려 쓰니까 아니, 볼펜 공장하는 사람이 볼펜도 안 갖고 다닌다는 핀잔을 많이 듣습니다.


윤은기: 모나미의 해외 수출 현황은 어떻습니까?


송하경: 터키, 일본의 아시아쪽과 미국 등 세계 각국에 수출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터키는 크레파스를 많이 수출하고 있는데, 한국의 시장점유율보다 훨씬 높은 7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합니다.


윤은기: 본인 스스로 CEO 스타일은 어떤 것 같습니까?


송하경: 저는 신중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희 업계나 여러 회사를 볼 때 새롭게 변신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파다가 망한 기업들을 많이 봤거든요. 특히 이 문구 쪽은 새로운 쪽으로 변신을 하지 않으면 굉장히 힘든 기업입니다. 제 나름대로도 항상 외국 기업들에 어떤 변화가 있는 지를 보고 그것을 자꾸 도입을 해서 변화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윤은기: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경영원칙은 무엇입니까?


송하경: 직원들한테 항상 이야기하는 것은 신뢰와 믿음입니다. 사실 신뢰와 믿음이 없이는 회사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직원을 판단할 때는 기본적인 능력보다도 일단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고 신뢰가 된다면 관련분야의 모든 것을 맡겨서 스스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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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앤TV

윤은기: 윤은기의 CEO&Friend에서 모나미 송하경 사장님의 30년 지기 친구인 엠엔에프에 조성규 대표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성규: 예, 안녕하십니까.


윤은기: 두 분은 언제부터 아시게 됐습니까?


조성규: 1978년도 연세대학교 상대 동기로 30년 지기로 지내고 있습니다. 같이 군대도 같은 해에 입대했다 같이 제대했고, 복학도 같이 해서 같은 복학생으로서 그때 당시에 학교를 다녔고. 또 결혼도 같은 시기에 했고요, 유학도 같은 시기에 갔다 와서 같이 귀국을 했고요. 그 이후에 우리 송 사장님이 사업을 하고  저도 사업을 하면서 서로 물어볼 건 물어보고 고민거리 있으며 같이 상담하면서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윤은기: 학교 다닐 때 송 사장님 스타일이 어땠나요?


조성규: 친구지만 남다른 점이 있다면 굉장히 성격이 담백하고 맺고 끊는 것이 정확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내가 좋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싫다. 그런 것들이 굉장히 명확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은기: 두 분이 오랫동안 만나셨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요?


조성규: 원래 그걸 서로 얘기 안하기도 되어 있는데. 저희가 같이 복학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복학하면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학점을 잘 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친한 친구들 같이 복학을 해서 어떤 수업을 들을까, 학점 잘 받는 수업을 들어야 되지 않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자기가 어떤 교수님하고 굉장히 가깝고, 조교도 친하기 때문에 그 수업만 들으면 무조건 좋은 학점이 나온대서 믿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업 중간에 교수님이 이사를 하신다, 짐을 옮겨야 된다. 그래서 둘이 가서 열심히 이삿짐도 나르고 무거운 화분도 나르고. 근데 나중에 성적을 받고 보니까 저희를 소개한 친구는 좋은 성적을 받았고, 저희는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가 계속 항의를 하면서 얘기하는데, 그때 복학생이면 무조건 잘 주는 줄 알았다가 아니라는 걸 알았죠.


윤은기: 송하경 사장님은 애견 CEO로도 유명합니다. 언제부터 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송하경: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들과 쭉 생활을 해왔었는데 그 다음에 군대 가고 유학가고, 결혼해서 아파트에 살면서 큰 개들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졌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길가의 애견샵에서 개를 보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환경을 탓하고 개를 못 기르면 다시는 내가 좋아하는 것 못 하겠구나란 생각에 과감하게 빌딩 7층에 개를 몇 마리 사다놓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윤은기: 도그쇼에도 여러 차례 출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송하경: 도그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쁜 개를 뽑는 대회이고, 또 하나는 훈련견 대회입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쪽을 많이 출전했다가 요새는 개를 훈련시켜서 프로그램대로 점수를 받는 쪽에 출전을 하고 세계선수권대회에도 2번이나 참가를 했습니다.


윤은기: 조 대표님은 송 사장님의 개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성규: 처음에는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보여줄 게 있다고 그래서 갔더니 상당히 덩치가 큰 개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왜 그러냐니까 앞으로 개를 기르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취미생활로 기르나보다 했는데 몇 주 있다가 또 보자고 그래서 갔습니다. 갈 때가 있다며 산본으로 데리고 갔는데 자기 개가 거기서 훈련을 받고 있는데 잘 받고 있는지 못 받고 있는지 구경을 하러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르고 명령에 복종할 수 있는 게 있구나 하면서 왜 좋아하는지를 알겠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애견연맹을 한다 그래서 저도 애견연맹에 끌려 들어가서 이사를 여려 해 했습니다.


윤은기: 개와 관련된 사업도 하고 계시죠?


송하경: 개를 기르다보니까 관심이 많아 인터넷이나 외국 잡지를 즐겨보는데 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용품들이나 의약품이나 여러 가지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 애견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는데 그 시장은 좁습니다. 그래서 제가 카탈로그를 통해 문구를 파는 노하우를 그대로 애견 용품 파는 쪽에 응용해 온라인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업계 1등을 달리고 있습니다.


윤은기: CEO로서 앞으로의 포부를 좀 들어보겠습니다.


송하경: 모나미가 46년간 제조업계에서 1등을 해오고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면 앞으로 남은 기간은 사무유통서비스기업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최고, 또 동남아, 세계까지 뻗어나가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윤은기: 장수기업이 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20년, 30년, 40년, 이미 46년이 됐는데요, 우리나라 문구 산업을 이끌어 왔지만 지금 대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모나미의 변신구상을 들으면서 여러분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기업환경의 변화에 따른 과감한 도전, 이걸 통해서 세계적인 인류기업도 탄생할겁니다. 오늘 모나미 송하경 대표와 함께했습니다. 저는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비즈니스앤TV  2008.01.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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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이의 유기견 사랑

2007.12.20 21:56 | Posted by 오마이도그 오마이도그


애견 데리고 국토종단..체험 전파


20대 한 젊은이가 유기견 사랑을 위한 국토종단에 나서기로 해 화제다.


'유기견에 관심과 사랑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애견을 데리고 국토종단에 나설 이상일(27)씨는 오는 17일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전망탑에서 한 달 일정으로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에 나선다.


쇼핑몰 도그카페에 근무하는 이씨는 "급격히 성장한 애견시장의 부작용으로 매년 10만 마리 이상이 거리로 내몰리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애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호소하는 의미에서 국토종단에 나서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를 비롯 전국 11군데 유기견 보호소에 회원들과 함께 사료를 보내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유기견 보호소에 사료가 부족해 굶어 죽는 개들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회원들과 함께 보호소 사료 보내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씨는 인터넷을 통해 '설희의 일기'로 유명인이 된 필명 '설희오빠'이기도 하다.


이씨가 직접 데리고 국토종단에 나설 애견(설희)은 견종을 알 수 없다고 해 일명 '코닥스리버'(코카스파니엘+닥스훈트+리트리버)로 불리는 믹스견이다.


그는 해남 땅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약 780km에 달하는 거리를 애견과 둘이 걸어서 완주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떠돌이 유기견을 데려와 보살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몸으로 체험해 많은 이들에게 전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지난 3월 9일 국무조정실에서 식용견의 위생적인 도축과 유통을 관리한다는 내용의 '식용견 위생관리법안' 철폐를 위한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 연합뉴스 2005-04-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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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이네 몽몽이들 태어났어요!

2007.12.01 23:39 | Posted by 오마이도그 오마이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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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가막혀서


진순이가 새끼를 낳았어요..


출산을 앞두고 바닥을 움푹하게 파고 종이 박스를 깔아주었더니..


진순이는 자리가 마음에 안들었던지..


밑에 깔아 준 박스를 모두 잘게 찢어서 바닥에 깐 후..


그 위에 귀여운 몽몽이들을 다섯마리나 낳아 놓았더라구요!


몽몽이라는 이름은 우리 이뿐딸이 지어주었어요..


눈도 못뜬 것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서로 부등켜 안고 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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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가막혀서


어미 젖을 잔뜩 빨아먹고 배불러서 널부러져 자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한 녀석은 메롱 하듯이 혓바닥을 낼름 내 놓고 있군요!


귀여워서 한컷 더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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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가막혀서

 

난지 한달 정도 되니까 까만콩 처럼 반들거리는 눈이..


짝~ 찌져졌어요..


인기척에 깜짝 눈을 뜨고 바라보는데 눈 코 귀가 똑같이 이뻐서 한컷!


어미에게 호박을 썰어 넣고 죽을 쑤어서 주면..


새끼들이 모두 쫄랑거리고 나와서 허겁지겁 어미 밥을 먹어댑니다.


죽그릇에 앞발을 풍덩~ 담그고 할짝거리기 땜시..


젖어서 달달떨기도 합니다.


우리 착한 진순이는 새끼들이 밥그릇에 달려들면..


슬그머니 비켜서서 새끼들이 배불리 먹게 놓아 두고..


새끼들이 다 배불리 먹고 자리를 뜨면..


그때에야 허기진 배를 채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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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가막혀서


목사님들 세분이 한마리씩 달라고 하셔서 드리기로 하고..


공부방 재원이가 한마리 달라고 졸라서 주기로 하고..


부여의 울엄니가 한마리 달라고 하셔서 드리기로 했어요..


엄니 드릴 한마리는 두어달 어미 곁에 두어..


제 어미에게 이뿐짓 하게 하다가..


완전히 독립할 때가 되면 데려다 드리려고요..


히~ ^^ @ 기가막혀서 2007.12.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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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화장에 워킹연습까지 해요"

2007.12.01 22:06 | Posted by 오마이도그 오마이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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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일보

부산 부흥고등학교 1학년 창원이의 꿈은 프로 핸들러다. 프로 핸들러는 애견의 미용과 훈련을 책임지는 전문가를 말한다.


도그쇼(애견전람회)에 개와 함께 등장해 능숙하게 개를 이끄는 사람이 바로 이 프로 핸들러들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자신이 데리고 나간 애견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핸들러가 할 일이에요. 개의 장점은 최대한 돋보이게 하고 결점은 가려주는 게 중요하죠."


창원이가 애견관리학원에 처음 다니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당시에는 애견미용사나 프로 핸들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개가 좋아서 시작했어요. 개를 더 잘 알고 더 잘 다루고 싶었거든요. 마침 동네에 애견미용학원이 생겨서 재빨리 등록을 했죠."


어릴 때부터 동물이라면 그저 좋았다는 창원이는 개 말고도 물고기, 새, 햄스터, 토끼 등 여러 동물을 키워 본 경험이 있다.


막연히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가 취미로 애견미용을 배우면서 새로운 적성을 발견하게 된 것.


"좋아하는 개를 만지고 꾸미는 일이 재미있어요. 미용 배운 뒤로는 우리집 개들도 직접 관리해요. 시도 때도 없이 빗기고 만지니까 이 녀석들이 좀 괴로울 거예요."


종이에 싼 웬디의 털을 갈래갈래 고무줄로 묶으면서 창원이가 자신의 애견 사랑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릴 때 강아지 사달라고 울고불고 떼쓰던 일이며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려 빗속을 미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던 이야기,지난해 11월 난생 처음 나간 도그쇼에서 자신이 데리고 나간 사모예드종이 1등상을 받은 이야기도 했다.


"참,지금 하는 일은 '래핑'이라고 해서 개의 털에 이물질이 묻거나 털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거예요. 도그쇼에 나갔을 때 윤기나는 털을 뽐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거든요."


그러나 웬디는 1년이 채 안 된 어린 개라서 도그쇼에 나오는 성견같은 근사한 스타일은 아직 연출이 불가능한 상태다.


창원이가 오는 3월 열리는 2005 FCI 부산인터내셔널도그쇼에 데리고 나갈 개는 현재 집에서 키우고 있는 또 다른 애견 쇼콜라. 쇼콜라는 갈색의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종으로 아는 사람에게서 특별히 분양받은,이른바 '족보 있는' 개라고.


"애견미용은 핸들러의 기본이에요. 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면 사람처럼 스프레이도 뿌리고 메이크업도 하죠. 쇼에 나가서는 개가 안정된 포즈를 취하고 근사하게 워킹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도그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와의 호흡. 개가 긴장하지 않고 심사위원의 주문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요즘 쇼콜라와 매일같이 산책도 하고 훈련도 하고 있어요. 앞으로 계속 도그쇼에 참가해서 경험과 실력을 쌓으려고 해요. 또 올해는 2급 자격증도 꼭 딸 겁니다."


창원이는 현재 애견미용과 핸들링 3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졸업 후에는 세계적인 프로로 활동하고 싶다며 일본어와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견가 창원이가 요즘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은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버려지는 개들이 너무 많다는 것. 창원이는 강아지를 '입양'할 때는 평생 함께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아지도 아기랑 똑같다고 생각해요. 시끄럽게 울고 용변 못 가리고 집안을 어지르던 아기들도 자라면서 철이 드는 것처럼 강아지도 키우다 보면 사람과의 관계에 적응을 하거든요. 처음 데려와서 말 안 듣는다고 금세 내다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강아지도 인형이나 장난감이 아닌 생명이고 가족입니다." @ 부산일보 2005-02-2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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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사랑 천직으로 이은 사람들

2007.11.17 23:21 | Posted by 오마이도그 오마이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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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강종일 원장 @ 세계일보

동물을 정말 사랑한다. 그러나 단순히 키우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찬다. 애완동물 관련 직업을 통해 동물과 평생 부대끼며 살고 싶다면? 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물 관련 취업 지망생들에게 건네는 조언을 들어봤다.


▲ 수의사 강종일 원장


아픈곳 표현못해 더 섬세한 손길 필요


아픈 곳을 표현하지 못하는 동물을 상대하니만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국내에서 수의사가 되려면 전국 10개 대학에 있는 수의과 대학에서 6년 과정을 마치고 농림부에서 시행하는 수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10개 수의대를 모두 합쳐 한 해 정원이 500명 안팎인데, 요즘은 정원을 줄이는 형편입니다. 애견 산업이 그렇듯, 수의사도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전망이 더 밝지요. 그러나 지금 국내 경제 상황에 비해 수의사가 과잉 배출되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내에는 1만명 정도의 수의사가 활동하고 있는데, 흔히 생각하는 개업의는 29%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학계나 연구기관, 수의검사 분야 등에서 일하고 있어요. 여성 수의학도의 비율도 점점 늘어나 절반 정도 됩니다. 지난해 수의사가 국세청의 특별관리 대상이 되는 고소득 전문직종군에 오르긴 했지만,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 개업을 하면 월 150만∼200만원 버는 것이 보통입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동물들과 친구처럼 지낸 저는 경영학을 전공하다 27살이 돼서야 수의학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이렇게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 동물간호사 김영석씨


유망 신종직업…사설학원 통해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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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간호사 김영석씨 @ 세계일보


아픈 동물이 왔을 때 수의사를 도와 간호하는 신종 직업이에요. 이전에는 동물병원에 간호사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설학원을 통해 매년 150∼180명이 배출돼 현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학원은 지난해 두 곳이 생겼고, 학원 졸업자들은 필기시험을 통해 사설 자격증을 따게 됩니다. 일주일에 3일, 하루 3∼4시간을 기준으로 수강료는 월 30만원이고 6개월 과정입니다. 학원을 마치고 동물병원에 취업하면 3개월 정도는 월 90만원 정도를 받고, 1년이 넘으면 100만원 이상 받을 수 있어요.  


예비 수의사인 제가 수의간호사로 일한 것은 수의학의 현장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의 공부에 대한 의욕도 더 생기고 전공분야도 확실히 정했습니다. 제가 나중에 수의사가 돼 병원을 개업해도 반드시 수의간호사 과정을 이수한 간호사를 채용할 겁니다. 동물에 대해 배우면서 애정과 지식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아니까요.


◇ 제주대 수의학과 99학번인 김영석(24)씨는 군 복무를 마친 뒤 수의간호사 학원을 수료하고 서울 군자동 수동물병원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


▲ 애견미용사 권상국 원장


여성이 유리…철저한 프로의식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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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미용사 권상국 원장 @ 세계일보


애견미용사는 단순히 애완견들을 목욕시키고 털을 깎는 것을 넘어 동물들을 제대로 기르는 방법까지 상담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애견미용사가 각광받는 직업으로 떠오르면서 유행처럼 번진 것 같아 걱정이 많아요. 철저한 프로 의식을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현재 애견미용학원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전국에 200여개나 됩니다.  


애견협회에서 주관하는 애견미용사 자격증은 1·2·3급이 있고요, 학원을 6개월 다니면 3급 시험을 볼 수 있고 6개월 더 다니면 2급을 볼 자격이 생깁니다. 학원비는 주5일 1회 4시간 교육을 기준으로 월 35만원선입니다. 도구비도 처음에 50만원 정도 들고요.


적성은 개를 사랑하면 충분합니다. 어떤 학생은 처음에 개 냄새에 구역질을 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동물병원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취업에는 아무래도 젊은 여성이 유리해요. 남성 지망생도 있지만 대부분이 여성인 애견 주인들이 남성 미용사에 대한 편견이 있더라고요. 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동물병원에서 일하면 월 80만원 정도, 애견숍에 들어가면 100만원 정도를 받게 됩니다. 힘들 때도 많지만, 배출된 제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는 모습을 볼 때 참 뿌듯합니다.


◇권상국(44) 원장은 1983년 서울 충무로 애견거리에 ‘애견미용사 권상국’이라는 간판을 처음 내걸었고, 현재 권상국 애견미용전문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 세계일보 기사입력 2004-10-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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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줄타기묘기 사람보다 잘하죠"

2007.11.17 22:45 | Posted by 오마이도그 오마이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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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어이구 잘하네, 우리 덕이. 그렇지! 잘한다 잘해.”


한국진도견협회 훈련소 배종표(56·사진) 소장이 손뼉을 치며 자신의 애견 ‘신덕’이를 치켜세우고 있다. 진돗개 신덕이는 1m 30cm 높이의 줄 위를 걷고 있다. 신덕이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보는 이의 가슴은 위아래로 출렁대는 줄처럼 철렁 한다. 하지만 배 소장은 되레 큰 목소리로 신덕이의 용기를 북돋운다. 사랑스런 연인을 부르듯, 귀여운 어린아이를 달래듯 애정 가득한 눈길로 “애기야, 잘하네”라고 끊임없이 외친다.


배 소장의 자랑인 신덕이의 묘기에는 ‘진돗개 진기명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어름산이(줄타기꾼)처럼 휘청휘청 줄을 타는가 하면 2m30cm의 장벽도 훌쩍 뛰어넘는다. 두 발로 서서 의자를 ‘깡충’ 뛰어넘기도 하고, 배 소장이 불러주는 ‘인삼’이란 단어를 ‘금산’ ‘인삼’ ‘축제’ ‘약제’라고 적혀 있는 종이판 중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빵’ 하고 총 쏘는 소리를 내면 총알을 맞은 듯 앞발 하나를 들어 절뚝절뚝대다가 이내 몸을 뒤집어 죽는 연기를 능청스레 하고, 죽은 듯 누워 있다가도 “일어나” 한마디에 민첩하게 일어난다. “신덕아 사랑해”라고 하면 사람같이 두 발로 총총 걸어와 곰살맞게 배 소장의 가슴에 머리를 살짝 기댄다.


“아가씨들은 이런 거 보면 끔뻑 죽지. 진돗개가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나? 요즘 레트리버니 맬러뮤트니 전부 외국 개만 찾는데 우리 진돗개가 얼마나 영리하고 깔끔한지 한번 길러봐. 진돗개 한번 길러본 사람은 외국 개는 못 기를걸? 이 녀석들 처음엔 쉽게 정을 안 주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그 정이 얼마나 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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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진도견협회 훈련소 배종표(56)소장 @ 세계일보



배 소장은 ‘진돗개 진기명기’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조련사다. 1988년부터 전국 각지를 돌며 각종 행사를 다닌다. 지난 11∼12일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04 FCI 서울 국제 도그쇼 및 애완용품 전시회’와 충남 금산에서 열린 ‘금산인삼축제’에 다녀왔다. 진돗개 3인방 신덕, 금상, 보미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신덕이는 아빠 개인 ‘누렁이’의 혈통을 이어받아 영특하기 그지없고, 금상이와 보미는 훈련소에 있는 20여마리의 진돗개 중에서 습득능력이 좋은 ‘영재견’들이다.


보미는 3일 만에 줄을 탔다. 


진도 앞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 영등축제는 진돗개 진기명기의 단골 행사다. 올해로 벌써 10년째. 어린이날에 열린 올해 축제는 어린이 관객이 많아서 신덕이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23kg의 체구로 200kg까지 끌 수 있는 신덕이의 마차는 아이들로 만원을 이뤘다. 아마도 아이들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이날 선물이었으리라.


“재미도 있고 보람도 커. 사람 사는 곳이 한옥에서 아파트로 바뀌고 각종 외국 개가 수입되면서 우리 진돗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잖아. 이렇게 우리 신덕이와 금상이 같은 애들을 보고 진돗개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면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방송에 한번 나오면 진도군에선 진돗개 분양이 눈에 띄게 늘어난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더니 우리가 그 격이지? 그래도 나는 흐뭇해. 암, 좋고말고.”


배 소장의 유별난 진돗개 사랑 덕에 유명 인사들도 애견을 그의 농장에 맡긴다. 농장은 주로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개를 맡기고 주말을 함께 보내다 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편이다. 국회의장 공관에서 아파트로 이사한 박관용 전 의장, 이남수 전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차관들이 이 농장을 이용하는 단골들이다.


진돗개 훈련은 보통 개들의 훈련과 다르다. 보통 개들은 먹이로 유인해 반복훈련을 시키지만 진돗개는 일주일을 굶겨도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쉽게 경계를 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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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처음에는 경계를 푸느라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훈련을 통해 습득한 내용은 절대 잊지 않는 것이 진돗개 훈련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한번 섬긴 주인 외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게 진돗개라고들 하지? 하지만 사랑으로 다가서면 정 주지 않는 녀석들이 없어. 우리 훈련소 ‘애들’은 다 내 말 잘 듣는 걸. 우리 토종개인 진돗개를 아끼고 사랑해서 외국에까지 수출할 날이 어서 와야 할 텐데.”


행사를 마친 신덕이는 언제나 3m 높이의 구름다리를 올라가 꼭대기에서 아래로 현수막을 늘어뜨린다. “진도견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에 배 소장의 바람이 숨겨져 있다. 진기명기가 아니라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그날을 기다리는.  


◇진돗개 신덕이가 어른 키를 웃도는 높은 장벽을 단숨에 뛰어넘고 있다.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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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밖에 안 크지만 애견산업의 미래”
미니애견 육성법 개발한 수의사 이창민씨
대구시 “건강검진, 육종연구, 처방식 품질안정화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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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 원장이 부인 박수진씨와 함께 절반 크기로 자란 미니애견들을 들어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조선일보


10일 오전 대구 수성구 지산동 한 동물병원. 입구에 ‘하프 독(Half Dog) 분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40여평 남짓한 병원에 들어서자 애완견 20여마리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짖어댔다. 한 칸에 가로·세로 70㎝정도 밖에 안되는 3층짜리 견사(犬舍)에서 풀쩍풀쩍 뛰기도, 꼬리를 흔들며 반기도 했다.


“강아지 아니에요. 노란 스파니엘은 3살에 2.5㎏, 저기 요크셔테리어는 2살인데 800g, 말티즈와 시츄는 700g… 대부분 1년 이상 자란 성견(成犬)들입니다.”


다 자란 몸무게가 1㎏미만의 미니애견(하프 독, T컵 강아지 등으로 불린다)을 길러내는 방법을 찾아낸 주인공인 이창민(42) 원장. 몸길이 15㎝가량의 애견 세 마리를 안고 나왔다. “10년 연구 끝에 나온 결과들”이라며 웃었다.


이 원장이 미니애견에 빠져든 것은 1997년. 미국에서 T컵 강아지 10마리가 마리당 600만원에 수입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다. “수의사는 물론, 애견산업 전반이 경쟁력이 없어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바로 이거다’싶더라구요” 했다.


‘내가 만들자’는 생각으로 뛰어 들었다고 한다. 수의사·한의사 등을 찾아 다니며 작게 키우는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닭으로 시도했지만, 실패였다. 밤을 새기 일쑤였고, 돈도 10년 동안 10억원 정도 썼다. 살던 집도 팔았다. 연구를 위해 데려온 강아지들이 병에 옮을까봐 진료도 포기한지 오래다.


이 원장의 목표는 ‘먹이’였다. 그간의 미니애견들은 선천적으로 작게 태어나거나 일부러 먹이지 않는 방법 등이 많아 폐사율도 높았다. 때문에 건강을 해치지 않고 크기만 작게 하는 ‘처방식’ 개발에 몰입한 것이다.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고, 지리산 골짜기를 헤맨 적도 여러번이다. 그 결과 필수 영양소와 소형화에 도움을 주는 24가지 천연재료를 찾아냈고, 적절한 비율로 처방식을 만들어 냈다. 100여마리를 직접 기르며 품종에 상관없이 절반 크기로 키워내는데도 성공했다. 다만 골격과 내장이 모두 작아져 번식은 어려웠다.


2005년이었다. 나름대로 성공을 확신해 학계와 언론계 등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믿지도 않았고, “너무 인위적이지 않냐”는 지적도 했다. 이 원장은 “수많은 이견(異見)과 지적이 내 연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원장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검증 받기로 했다. 생후 3∼10개월까지 처방식만 먹이고, 이후부엔 다른 애완견과 똑같이 기르면 된다는 조건으로 100여마리를 분양했다. 모두가 목표 크기에 달성했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최근 이 원장의 소식이 알려지자 대구시도 지원의사를 밝혔다. 시 측은 “이 원장의 미니애견들의 건강상태 검진, 육종연구 지원, 처방식의 품질안정화 지원 등을 논의 중”이라며 “오는 10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애견산업엑스포에서도 부스를 만들어 이 원장의 미니애견을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대단한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미니애견이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우리나라 애견산업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 원장. “유일하게 믿어주고 따라와준 사람”이라고 소개한 부인 박수진(34)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 짓고 있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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